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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해석: 미야자키 하야오 은퇴작과 앵무새의 의미

by N번째 인생 2026. 1. 21.

서론: 난해함 속에 숨겨진 거장의 작별 인사

2023년, 스튜디오 지브리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10년 만에 신작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봉 전부터 '미야자키 하야오 은퇴작'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 어떤 마케팅도 하지 않는 신비주의 전략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습니다. "지브리 역대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와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루한 영화"라는 혹평이 공존했죠.

저 역시 첫 관람 후 극장을 나서며 묘한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친절한 서사를 기대했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불친절하고, 아름답지만 기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 모험 활극이 아닙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탑, 왜가리, 그리고 수많은 앵무새들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평생을 바쳐온 애니메이션 세계와 그가 짊어졌던 창작의 고통,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호불호가 갈리는 이 난해한 여정의 길라잡이가 되어보고자 합니다. 특히 영화의 핵심 키워드인 '지브리 해석'과 후반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앵무새'의 의미를 중심으로, 거장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마히토의 여정,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 고백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 대원미디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어머니를 화재로 잃은 소년 '마히토'의 상실감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마히토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캐릭터로 해석됩니다. 군수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병약했던 어머니, 그리고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감독의 실제 유년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마히토가 이사 간 저택에서 발견한 신비로운 '탑'은 곧 스튜디오 지브리,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구축해 온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현실의 고통(어머니의 죽음, 새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마히토는 탑 안의 세계, 즉 '이세계(異世界)'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 과정은 감독이 현실의 비극을 잊기 위해 애니메이션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구축해 온 과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 마히토가 자신의 머리를 돌로 찍어 상처를 내는 장면은, 악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창작자의 고통스러운 자해와도 같은 몸부림으로 읽힙니다. 이처럼 영화는 판타지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속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회고록에 가깝습니다.

2. 욕망의 상징, '앵무새'와 창작의 균형

영화 후반부, 관객들에게 가장 큰 의문을 남기는 존재는 바로 잉꼬, 즉 앵무새들입니다.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고, 군대처럼 조직되어 있으며, '대왕'을 따르는 이 앵무새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브리 해석'의 관점에서 앵무새는 대중의 욕망, 상업주의, 혹은 무분별한 파시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와라와라(생명의 씨앗)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려 합니다. 이는 순수한 창작의 의도가 상업적 논리나 대중의 무비판적인 소비에 의해 훼손되는 과정을 은유합니다. 또한, 앵무새 대왕이 보여주는 권위적이고 성급한 태도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경계해 온 군국주의나 전체주의적 광기를 연상케 합니다.

특히 앵무새 대왕이 큰할아버지(세계를 창조한 신적 존재)가 쌓아 올린 블록(세계의 균형)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멋대로 쌓아 올리려다 결국 탑 전체를 붕괴시키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는 창작의 고통과 균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욕망만을 앞세운 세력이 개입했을 때 세계(작품 혹은 스튜디오 지브리)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경고입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앵무새' 키워드가 이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무너지는 탑과 악의 없는 돌, "너만의 탑을 쌓아라"

이세계의 지배자인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이 세계를 다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악의에 물들지 않은 돌"을 마히토에게 건네며, 이것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계속 유지해 주길 바랍니다. 여기서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 혹은 그의 스승인 다카하타 이사오를 투영한 인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마히토는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자신은 머리에 상처(악의)를 가진 인간이며, 친구들(앵무새, 왜가리 등)이 기다리는 '불타는 현실'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찾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다음 세대에게 "내 세계를 이어받지 말고, 너희만의 세계를 살아라"라고 말하는 작별 인사와도 같습니다.

결국 탑은 무너지고, 이세계는 소멸합니다. 하지만 마히토는 현실로 돌아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감독은 완벽하게 통제된 환상의 세계(지브리 왕국)가 영원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묻습니다. 악의와 상실로 가득 찬, 때로는 전쟁과 같은 잔혹한 현실일지라도, 그 속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결론: 난해하지만 솔직한, 거장의 아름다운 마침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서사는 툭툭 끊기고, 상징은 겹겹이 쌓여 있어 한 번의 관람으로는 온전히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같은 대중적인 재미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80대 노장이 된 감독이 자신의 인생과 애니메이션 철학을 가감 없이,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놓은 고백록입니다. 그는 자신의 세계가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그 폐허 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다음 세대를 축복합니다.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은퇴작'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우리 각자가 품고 있는 상처와 악의를 마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살아갈 용기를 묻는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앵무새처럼 욕망에 휩쓸려 살 것인가, 아니면 마히토처럼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친구들과 함께 현실을 살아갈 것인가. 선택은 이제 스크린 밖을 나서는 우리의 몫입니다.


📝 영화 추가 정보 (참고용)

기본 정보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The Boy and the Heron)
장르 애니메이션, 모험, 판타지, 드라마
감독/각본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상영 시간 124분 (2시간 4분)

평가 및 흥행 (2026년 1월 기준)

전반적으로 평론가 점수 대비 관객 점수가 낮은편

구분 점수/수치
로튼 토마토 신선도 96% / 팝콘 88%
IMDb 7.3 / 10
Metacritic 메타스코어 91, 점수 7.8
네이버 영화 실관람객 6.98 / 평론가 8
한국 관객 수 약 201만 명

*(출처: Box Office Mojo, Rotten Tomatoes, KOBIS)

💡 관람 포인트 & 팁

  • 추천 대상: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관이 궁금한 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즐기는 분, 상징과 은유를 해석하기 좋아하는 분.
  • 비추천 대상: 명확한 기승전결과 친절한 스토리텔링을 선호하는 분, 지브리 특유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모험물을 기대하는 분.
  • 볼 수 있는 곳: 현재 넷플릭스(Netflix)에서 스트리밍 중입니다. (참고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