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엔트 특급살인(2017) 리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고전 추리소설의 뼈대에 현대 블록버스터의 광택을 입힌, 화려하고 단정한 재승차”입니다. 열차라는 한정된 무대, 모두가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리고 ‘명탐정 포와로’라는 상징성까지 갖춘 이야기라서, 결말을 미리 알지 않고 탑승하면 긴장감이 꽤 오래 유지됩니다. 이 글은 결말 스포일러 없이, 관람 포인트와 개인적인 취향 기준의 감상을 중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고전 추리의 맛, 그리고 2017년식 ‘쇼’의 감각
이 영화가 영리한 지점은, 원작이 가진 “인물들 사이의 공기”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면서도, 화면을 꽉 채우는 볼거리로 관객을 유인한다는 데 있습니다. 추리물은 자칫 “대사로만 굴러가는 영화”가 되기 쉬운데,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설원과 철길, 객실과 복도, 식당칸의 기하학적인 구도를 이용해서 ‘추리극’에 ‘무대극’ 같은 맛을 더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추리영화를 볼 때 ‘단서가 정직하게 쌓이는지’와 ‘인물이 살아 있는지’를 먼저 봅니다. 이 작품은 단서의 쾌감보다는 인물의 사연과 분위기에 더 힘이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범인을 맞히는 게임”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호흡이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고전 특유의 품격”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배우 앙상블과 미장센이 꽤 만족스럽게 다가갈 가능성이 큽니다.
포와로의 얼굴: 냉정한 추리와 흔들리는 윤리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포와로는, 흔히 떠올리는 ‘말끔한 추리 기계’라기보다 감정과 신념이 선명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 변화는 호불호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선택이 영화적으로는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열차 안 사건은 결국 “논리로만 봉인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과 감정이 덜컥 걸리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해석이 강해질수록, 추리의 리듬이 ‘심리극’ 쪽으로 기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여러 인물이 짧은 시간에 등장하고 각자 사연을 흘려야 하다 보니, 어떤 인물은 얼굴만 화려하게 지나가고 어떤 인물은 감정선이 상대적으로 강조됩니다. 저는 이 지점이 오히려 “올스타 캐스팅의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드러나는 구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은 즐겁지만, 모든 인물을 깊게 사랑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편입니다.
열차라는 무대가 주는 몰입: ‘복도’와 ‘식당칸’의 긴장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상 포인트는 열차 내부의 동선입니다. 복도는 좁고, 문은 많고, 사람은 계속 스쳐 지나갑니다. 카메라가 그 복도를 따라 움직일 때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지금 누구 방에 누가 들어갔지?”를 복기하게 됩니다. 추리물에서 중요한 건 단서 그 자체보다, 관객의 시선이 어디에 고정되느냐인데, 이 영화는 공간 배치로 그 시선을 꽤 깔끔하게 유도합니다.
식당칸 장면들은 특히 무대 위 합주처럼 보입니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생기는 기묘한 정적,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지에 따라 바뀌는 온도, 그리고 그 가운데서 포와로가 ‘질문’으로 공기를 갈라놓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에서 “추리영화는 결국 말의 스포츠”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크게 사건이 터지지 않아도, 대사와 시선만으로 분위기가 뒤집히는 쾌감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 :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좋았던 점은 명확합니다. 시대극의 의상과 세트가 주는 호사스러움, 배우들의 존재감, 그리고 “열차라는 밀실”이 주는 장르적 안정감입니다. 추리물을 오랜만에 보는 분도, 이야기의 규칙을 금방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고전의 결을 살리려는 연출이 때로는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원작이나 이전 영상화된 작품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감탄의 순간이 “새로움”보다는 “재현의 완성도”에 머물 수 있습니다. 또 전개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전까지는 인물 소개에 시간이 쓰이기 때문에, 초반부를 느슨하다고 느끼는 관객도 분명히 있을 듯합니다.
추천 대상
- 결말을 모르고, 정통 ‘밀실 추리’의 공기를 느끼고 싶은 분
- 화려한 배우 앙상블과 시대극 미장센을 좋아하는 분
- 단서 맞히기보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의 온도”를 따라가는 추리극을 좋아하는 분
비추천 대상
- 빠른 편집과 강한 반전 드라이브를 기대하는 분
- 추리는 철저히 논리 퍼즐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감정선 비중이 부담일 수 있습니다)
결론: 고전 추리의 현대적 체험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추리의 신선함보다, 고전의 규칙을 깔끔하게 복원하는 데 강점이 있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추리 입문용”이라기보다는, 한 번쯤은 장르의 원형을 다시 맛보고 싶은 관객에게 잘 맞는 선택이라고 느꼈습니다. 만약 관람하신다면, 결말 관련 정보는 최대한 피하고, 열차라는 공간이 만드는 긴장감을 천천히 즐기는 쪽이 만족도가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관람 전 알고 가면 좋은 포인트
- 이 작품은 여러 차례 영상화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2017년 영화판이며, “새로움”보다는 “재해석의 톤”을 보는 재미가 큽니다.
- 제작 측은 대형 화면에 유리한 촬영 포맷(65mm 카메라 사용)을 언급한 바 있어, 가능하면 큰 스크린/큰 TV로 볼 때 공간감이 살아납니다.
- 이 영화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추리적 부분 보다는, 살인을 모의하고 저지를만큼 고통스러웠던 등장인물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 영화입니다
- 화려한 영상미와 음악으로 열차와 현장 분위기가 잘 나타냈습니다.